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(문단 편집) === 가문과 초년기 === 5세기의 로마 문학가 마크로비우스에 따르면, [[스키피오]]는 [[지팡이]]를 의미하며, 눈이 먼 아버지를 지팡이 대신 이끌어 준 아들에게 이런 별명이 붙었고,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물려받았다고 한다. 이 가문은 [[고대 로마]]의 저명한 귀족 가문인 [[코르넬리우스]] 씨족에서도 대표적인 명문가로 명성이 자자했다. 증조부인 [[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]]는 기원전 298년 집정관을 역임하여 북이탈리아의 [[켈트]]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며, 기원전 280년에 [[감찰관]]을 역임했다. 조부인 [[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(기원전 259년 집정관)|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]]는 기원전 259년 집정관을 역임해 코르시카에서 카르타고군을 쫓아냈다. 삼촌인 [[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]]는 기원전 222년 집정관을 맡아 인수브레스족을 격파했고, 아버지 [[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(기원전 218년 집정관)|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]]는 기원전 218년 집정관을 역임했다. 어머니 폼포니아는 [[노빌레스]] 출신으로 기원전 233년 집정관에 오른 [[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]]의 딸이다. 형제로 [[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]]가 있었다. 형제간의 우애는 매우 굳건했다고 하며, 루키우스는 형의 곁을 항상 지켰고 운명을 함께 하였다고 전해진다. 출생 시기는 그의 생애에 대한 수많은 기록으로 정확한 추측이 가능하다. 가령 [[폴리비오스]]는 17세 때 아버지를 [[티키누스 전투]]에서 구해냈다고 전했으며, 24세 때 히스파니아 전쟁에 지원했다는 등의 기록이 전해진다. 이로 볼 때 기원전 236년 또는 기원전 235년에 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, 대부분의 학자들은 기원전 236년일 거라고 본다. 실리우스 이탈리쿠스는 어머니 폼포니아가 그를 낳던 중 사망했다고 기술했고, [[대 플리니우스]]는 그가 어머니의 자궁을 절단하여 꺼내졌다고 기술했다. 하지만 학자들은 루키우스가 푸블리우스보다 어린 나이이고 친형제인 것이 분명하므로 잘못된 기록으로 간주한다. 일부 학자들은 푸블리우스가 아름다운 긴 머리카락을 가져서 카이사르(Caesar)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을 대 플리니우스가 '절단하다'라는 의미인 카이소(Caeso)로 오인했을 거라 추정한다.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. 다만 [[발레리우스 막시무스]]에 따르면, 푸블리우스는 술집에 자주 들락거리며 유흥을 즐겼다고 한다. [[아울루스 겔리우스]]는 푸블리우스 생전에 활동했던 풍자시인 나이비우스의 아래의 시를 인용하면서 푸블리우스가 어린 시절에 한량처럼 살았다고 밝혔다. >자신의 손으로 많은 영광스러운 업적을 이룩한 사람. >그 공적이 여전히 남아있고 모든 나라가 경탄하는 사람. >아버지가 비옷을 입은 채 불량한 친구로부터 떼어놓아야 했던 사람. [[폴리비오스]]에 따르면, 평민 [[가이우스 라일리우스]]는 푸블리우스 스키피오와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로서 그의 모든 행적에 동참했다고 한다. 푸블리우스도 그런 라일리우스를 무척 소중하게 여겨서, 그가 없을 때 중요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